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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작성일: 2022-03-28 14:12

제목 고향 남도(南島)의 길을 걷다.
작성자
김길전
조회
210

고향 남도(南島)의 길을 걷다.
 
젊은 남녀가 내 고운 고향의 길을 걷는 것을 TV에서 보았다. 반가워서 친구들의 단톡방에 어이 촌놈들, 지금 EBS에 진도 서해랑 길 나오네.‘ 올려주었다.
굳이 그 두서없고 뜬금없는 편집이나 여행 작가의 그 천편일륜의 달보드레한 수사적 내레이션을 작정한 듯 읽어대는 출연자를 말하지는 않겠다. 그것은 돈을 받고 하는 그들의 일이고 보이지 않는 작가는 또 드러내고 싶은 그 무언가가 있을 것이므로...
두 출연자는 따로 떨어져 걷다가 굴포 길에서 만난다.
그곳에는 갓 축조한 돌 제방이 있었다. 그 제방 위를 걸으며 그들이 얘기한다. ‘이 제방은 윤선도가 쌓은 제방인데 그 시대에 이런 제방을 쌓았다는 것이 놀랍다고 말한다.
그러나 내게 굴포, 졸복집지나 해안도로는 불과 작년까지 콘크리트 호안도로였다. 다시 말해 그 축도의 연대는 물경 ‘2022년경이라는 얘기다. 그냥 지나치면 보이지 않는다.
그 초입 배중손사당은 거부 윤선도가 거쳐 간 그 많은 집 중의 하나로 바로잡았다. 정신에 기름기만 낀 노인이 그곳에 제방을 쌓아 염해의 피해를 막은 논이 있었기는 했다하나 그것이 그저 그 굶주리고 헐벗은 진도 그 굴청굴포 사람들을 위한 일이었겠는가?
효종이 고산에게 하사했다는 수원 집을 옮겨왔다는 해남 녹우당에 가보면 전시된 고산의 노비문서 땅문서가 말아 놓은 덕석만 하다. 천상 금수저였던 그에게 백성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는 너른 땅과 수많은 노비들을 보는 것만으로 절로 배가 불렀을 것이다. 아랫배에 기름이 그득하였을 것이다.
보길도 세연정.
고산 윤선도가 보길도에 머물면서 지은 정자로 날이 좋은 날이면 노비들에게 술과 안주를 마차에 가득 싣게 하고 기생들을 거느리고 나와 술을 한 잔 걸치고서는 어부사시사를 부르게 했던 곳이다라는 기록이 있다.
거기 세연정에 높이 앉아 풍악을 지피며 그야말로 모내기철의 개척교회처럼 나와는 하등 상관없는 그 띵까 띵까의 시가(詩歌) 그 어느 구절에도 이 땅의 민중 그 고난에 관한 구절은 없다. 사람이 서로 달랐을 것이다. 그의 지화자의 삶은 얼마나 많은 백성 그 고혈과 노고 위에 결린 무지개 였을까?

그이에게 백성은 무궁무진한 한낱 도구였다.
착취와 고혈로 짜낸 그 이리 오너라의 족적.
귀한 우전차 찻물 우려내듯 착취와 고혈을 때 우려낸 글,

그러나 단언컨대 속물은 절대 위대한 글을 자아낼 수 없다. 그것이 저 하나의 우월감의 발로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오늘 우리는 부러 모른척하고 있다.
고산, 그의 삶은 어쩌면 천하의 잔머리꾼 우암(尤庵)에 패해 유배된 패자의 흐릿한 잃어버린 지평선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우리는 그 고단한 민중이 내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였을지도 모르면서도 부러 뒷짐 지고 먼 산을 보고 있지나 않은가?

우리가 길이 받들어야 할 위대한 장군 배중손은 이제 사당에서마저 쫓겨냈다.
DJ가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결정되었을 때 누구는 오슬로의 한림원을 찾아가 부당하다고 로비하였다.
오늘날 이 나라 그 더러운 짓의 시작은 어디였을까?
우리는 플래카드와 겉에만 유약을 바르는 호도(糊塗)의 세상을 살고 있다.
누구는 이 땅의 신성한 권위 그 기본 틀인 청와대를 무당의 말에 혹하여 민족의 역사를 작파하고, 누구는 막 놀아 먹은 그것을 페미니즘으로 또 작당한 누구는 그 앞잡이로 저리 풀을 쑤어 바르며 설쳐대고 있다.
구멍 속에서 기어 나온 꼬리 아홉의 점쟁이 그 기침이 내 국가와 우리 민족과 민족의 역사와 구성원의 전통과 후손의 예의범절과 인간으로서의 의리와 사람의 덕목과 더불어 사는 그 사회적 상식과 합의와 질서를 앞서는 시대.
아무리 그것이 그 척박하고 무뢰한 자들의 생존의 방식이었다 해도 후손은 결코 그것을 눈감고 돌아서서는 안 되는 일이다.
()이 살던 집에서 그 후 을()이 살았어도 그 집은 끝내 갑의 집이어야 하는가
그것은 작금의 ‘청와대가 누구의 집인가?’와 다르지 않다.
그것이야말로 하석상대(下石上臺)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나를 지켜내기 위해서 역사에는 적확(的確)한 고증이 필요하다.
그것을 도외시하면, 그리하여 그것이 어떤 필요에 동원된 것이라면 그것이야 말로 오늘 저들처럼 진실에 대한 모반이며 협잡이며 후손들에게 사기이고 만다.
한 때 한 나라의 도읍이던 땅의 후손들은 그래서는 안 되는 일이다. 아무리 역사가 팽끼칠이라 해도 절대로 절대로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다.
덧칠한 역사가 어떻게 되돌아오는가를 우리는 익히 알고 있지 않는가?
누가 히틀러라는 괴물을 만들었는가? 누가 일어서서 그에게 미친개처럼 열광했는가?
그 역겨운 우민(愚民)에의 그 선동의 포퓰리즘에 이제 와서 나는 아니다, 라며 손을 내젓는 저 독일국민은 이노센트하다 할 수 있는가?

역사는 진실이지 결코 푼돈의 미끼일 수는 없기에 거기 용장성과 남도석성과 동령개를 보며 나는 되뇐다.
이것은 아니다,’
미리 설정한 어떤 결론으로 억지 춘향을 만들면 훗날 가장 힘든 것은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맞춤의 설()에 속살을 내보이는 춘향이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고로, 나는 생각한다.
튼튼한 담장이 좋은 이웃을 만든다.’
 
내 고향에 대한 고언(苦言), 이것이 다만 나의 편견이 아니기를 소망한다.
뒤짐 지고 서서 나는 나의 고향에 그 역사에 떳떳한가?
무릇 제 안에 아직 고향을 가진 자, 어떤 이의 놀음에 흐트러지지 않게 고향을 지켜야만 하는 주어진 책무가 있다.
 
우리가 쓰는 말에 대동소이(大同小異)가 있다.
기억에 의존하여 쓴 글이므로 그 인용에 다소 다를 수 있을 것이나 크게 다르지는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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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콘텐츠 최종수정일 : 2018-02-06 1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