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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작성일: 2016-09-02 17:14

제목 비가 오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떠난 야간 도보여행(2)
작성자
이양래
조회
1168

비가 오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떠난 야간 도보여행(2)

드디어 녹진에 들어섰다. 저녁 10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 우리는 출발할 때 녹진에 와서 저녁 식사를 할 계획이었다. 그래서 간단한 간식거리만 준비를 하였는데 예정시간보다 훨씬 늦다보니 식당들이 대부분 문을 닫았다. 친구가 운영하는 식당만이 아직 불이 켜져 있었다. 그렇지만 이 식당도 문을 닫기 위해 종업원처럼 보이는 사람이 밖에 나와 이 것 저 것을 챙기고 있었다. 여기 사장은 나의 중학교 동창으로 절친하게 지내는 사이이다. 그렇지만 늦은 밤에 “밤 좀 주소 할 수 없었다”. 우리는 녹진 슈퍼에서 간식거리를 사서 저녁을 대신하기로 했다. 슈퍼와 친구 식당과는 50미터 정도 떨어져 있다. 그 슈퍼 앞에 있는 플라스틱 의자에 배낭을 내려놓고 한숨을 돌린 다음 안으로 들어섰다.

가계 안은 정말 시원했다. 에어컨이 빵빵하게 틀어져 있었지만 나는 흐르는 땀을 연신 훔치면서 이것저것 챙겼다. 출발 할 때 생수 3병을 가지고 왔는데 부족할 것 같아 2병을 더 샀다. 얼음으로 된 아이스크림과 빵과 과자도 샀다. 그리고 녹진대교 근처에서 먹기로 하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친구 식당 앞을 통과 하는 순간, 마침 영업을 끝내고 나오던 친구가 우리부부를 보았다. 깜짝 놀라는 모습으로 어디 가느냐고 물었다. 우리는 웃으면서 수역 우리 집에서 여기까지 걸어 왔다고 하자 대단하다며 어디까지 가느냐고 또 물었다. 계속 가야지 하고 우리는 웃었다.

이야기 하고 있는 동안 친구 부인도 밖으로 나왔다. 시원한 물병을 갖다 주면서 마시라고 권했다. 잠시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우리는 일어났다. 바다 물살이 보이는 공연장 벤치에 앉아 보름달이라는 빵을 먹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거기까지 가지 않고 검문 파출소가 있는 길 경계석에 앉았다. 가로등 불빛이 밝게 비추고 있고 경계석 높이가 앉기에도 좋았기 때문이었다. 지나가는 차량을 보면서 우리 부부는 다정히 앉았다. 이럴 때 가장 친근감이 와 닿는다. 이 밤중에, 그것도 아무도 없는 대로변에서 남녀가 함께 앉아서 뭔가를 먹고 있는 모습은 그리 좋은 그림은 아니다. 평상시 같으면 처량하기 그지없는 모양세다.

빵 봉지를 막 뜯어 꺼내려는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그 친구다. “지금 어디냐고....묻는다”. 내가 파출소 옆이라고 하자 빨리 자기 식당으로 다시 오란다. 맥주 한 잔 하고 가란다. 이 친구는 우리가 당연히 저녁밥을 먹었을 거라 생각하고 시원한 맥주를 권하는 것 같았다. 우리가 떠난 뒤 몹시 서운해서 다시 전화를 한 모양이다. 알았다고 하고 우리는 다시 배낭을 챙겨 왔던 길을 다시 갔다. 시원한 맥주와 싱싱한 오징어를 내왔다. 맥주의 목 넘김은 정말 좋았다. 배추도 아삭아삭하고 맛이 있었다. 이렇게 땀을 흘리고 저녁도 안 먹었으니 맛있었겠지만 친구의 정이 듬뿍 담겨서 더 맛있고 시원했으리라.... 친구에게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우리는 다시 길을 나섰다.

10시가 넘어서고 있었다. 녹진에서 머문 시간이 많아 길을 재촉했다. 울돌목의 물살을 보는 것도 생략했다. 국도를 건너 벽파로 향했다. 해안의 가로등을 따라가자 펜션에는 많은 승용차가 주차해 있었다. 토요일이라 가족 여행객이 많이 온 모양이다.

우리는 천천히 걸으면서 앞으로 갈 코스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녹진에서 벽파까지는 약 10키로이고, 또 연산을 거쳐 황조까지 해안도로를 따라 가면 새벽 2시가 넘을 것 같았다. 특히 이 시간대는 달이 지고 깜깜한 어둠이 내릴 것 같아 걱정이 되었다. 이 해안도로는 밤에는 거의 사람이 다니지 않을 뿐만 아리라 차량도 드물게 다니는 정말 한적한 길이다. 그렇지만 낮에는 드라이브하기에 딱 좋은 도로다. 바다도 잘 조망 할 수 있고 산세도 수려하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는 이 길에 대한 두 번의 경험이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아 있다. 한번은 5년 전 밤 11시 경에 이 길을 통과 한 적이 있다. 6월 6일 현충일 날이다. 초여름이 시작되는 문턱이었다. 연산마을을 지나자 온 산과 바닷가에 반딧불 천지였다.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수많은 반딧불이 신비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도깨비불처럼 보여 무섭기도 하였다. 특히 해변 아래에서 큰 불 빛이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하자 내 아내는 무척이나 무서웠던 모양이었다.

뒤에 안 일이지만 이 구간은 전쟁 때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또 옛날에는 길이 없어서 해가 지면 주변에 사는 사람들은 무서워서 이곳에 가지 않는다고 들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도깨비가 출현할 수 있는 가장 음습한 시간대에 이곳을 걸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 다음에는 낮에 통과했던 기억이 난다. 회동에서 출발해서 모세미와 연동, 벽파, 녹진 등을 거쳐 수역 우리 집 까지 왔던 것이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아내는 이 구간을 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는 것 같았다. 지난 기억이 떠오른 모양이다. 내가 이 낌새를 채고도 계획했던 도로로 계속해서 가자고 할 수는 없었다. 처음 목표는 회동 신비의 바닷길까지 가는 것이었다. 다른 길을 생각해야만 했다. 신동해안도로까지 간 다음 대대로 홍주와 새로 조성된 농공단지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신동마을, 금골, 연산, 덕병, 한의, 북치를 거쳐 수역까지 오는 길을 나는 제시했다. 나의 짝도 그러자고 했다.

마치 골짜기 같은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올라왔다. 작년까지만 해도 진도 대동맥 역할을 했던 도로를 따라 금골마을까지 쉬지 않고 걸었다. 속도는 정말 가만 가만히 걷는 수준이었다. 자정이 넘어 가고 있었다. 우리는 다리도 아프고 해서 쉴 곳이 필요했다. 금골 파출소 앞 정자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에 엉덩이를 턱 내려놓았다. 온 몸을 끌어 내리듯이 억누르던 무게가 순간 평상 위에 퍼져 나갔다. 등산화도 벗고 배낭도 내팽개치듯 저 만치에 놓고 그냥 퍼져버렸다. 이런 편안함이 여기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구나 하고 생각하니 너무 좋았다.

환한 파출소 안을 보니 근무자 한명만이 조용히 책상에 앉아 있었다. 우리는 평상에 누워 잠시 숨을 고른 다음 연산마을로 향했다. 그렇게 밝던 달님도 이제 서서히 서산으로 지고 있었다. 이슬이 내리고 옅은 운무가 깔리면서 분위기는 새벽으로 치닫고 있었다. 우리가 연산마을에 들어서자 조용했던 마을이 순간 시끄럽다. 한 마리의 개가 인기척에 짓기 시작하자 온 동네 개들이 합창을 한다. 혹시나 마을 사람들이 잠에서 깨어나 문을 열고 나올까봐 조용히 동네를 통과했다. 덕병마을에 들어설 때는 길이 더욱 어두워지고 있었다. 달이 산너머로 넘어가기 직전이었다. 펼쳐진 간척지 논 주위에는 안개가 자욱했다.

덕병마을 가운데 골목을 통과하여 농로에 진입했다. 새벽 1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오른쪽 발가락과 발바닥이 아파 약간 다리를 부자연스럽게 걷기 시작하자 발목 위로 통증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최대한 자세를 바르게 하려 했지만 쉽지가 않았다. 길이 어두워서 그런지 발걸음은 더 무겁게 느껴졌다. 그렇지만 어둠이 깔린 캄캄하고 조용한 들길이 내 존재감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어 약간의 불편함은 참을 수가 있었다.

우리는 한의마을 입구에 도착했다. 저 멀리 수유리와 전두마을의 불빛이 보였다. 북치마을의 불빛은 손으로 잡힐 듯이 가까이 다가왔다. “아! 이제 집에 다 왔구나” 생각하니 피곤함 속에서도 마음의 안정이 찾아왔다. 목표물이 분명하게 보이니 생각도 또렷하게 정립된 것이다. 이 구간은 낮에는 넓은 간척지 논이 펼쳐져 있어서 마음을 확 트이게 한다. 하지만 밤길은 모든 것을 감추어 버린다. 오직 내 주변만을 살필 수 있도록 허용한다. 우리 부부는 손을 잡거나 어깨를 맞대고 걸었다. 떨어졌다가 다시 가까이 걷고를 반복했다. 이 시간대에는 급격히 말 수가 줄어든다. 가끔 시계를 꺼내 도착예정 시간을 예측해 보면서 우리를 기다리는 보금 자리를 상상한다. 세상사가 그렇듯이 힘이 들수록 뭔가를 갈망하는 힘은 더 커진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2시 57분에 집에 도착했다. 약 10시간 동안 걸었다. 처음 출발할 때에는 아침 동틀 때까지 밤새 걸어서 회동까지 갈 계획이었다. 그렇지만 이런 저런 핑계로 코스를 변경하고 10시간 걸었는데도 이렇게 힘든 것을 보니 우리도 이제는 나이 벽에 직면한 것 같았다. 솔직히 인정하고 싶지는 않으나 현실을 받아들여야 마음이 편할 것 같다. 정원에 앉아 하늘을 보았다. 별이 건조하게만 보였다. 비는 어디에도 숨어 있지 않았다. 더 기다리라고만 하는 것 같았다. 한참 동안 앉아서 남은 물을 계속 들이켰다. 가뭄의 단비를 간절히 기다리는 마음으로, 한여름 밤 그 대지의 열기를 느껴보기 위해 걸었던 시간이 오래 오래 기억되기를 소망해 본다. 제발 비를 내려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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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콘텐츠 최종수정일 : 2018-02-06 1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