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4.05일

작성일: 2016-09-02 17:12
비가 오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떠난 야간 도보여행(1)
타는 목마름이 간절함을 낳는다. 들판의 초목들과 논밭의 곡식들은 하늘에서 비가 오기를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이제는 지쳐서 시들시들 말라가고 있다. 농민들의 마음도 타들어 가고 있다. 누구라도 기도하는 마음으로 소망할 것이다. 큰 비는 아니더라도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소나기라도 내리기를..... 나 역시 이러한 마음들이 하늘에 닿기를 갈망하면서 메마른 대지를 향해 나아갔다.
8월 13일 토요일 오후 5시에 아내와 함께 수역집을 나섰다. 해가 서산으로 기울고 있지만 햇살은 아직도 예리한 칼 끝 같았다. 모자를 푹 눌러 쓰고 터벅터벅 걷기 시작했다. 흐르는 땀방울을 연신 수건으로 훔쳤지만 소용이 없었다. 한숨이 나왔다. 그래도 가끔 스쳐지나가는 바람결이 위안이면 위안이었다. 동네 앞 들녘에서는 가뭄 속에서도 벼 이삭이 새록새록 피어 나고 있어 그 생명력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 원천은 무엇일까? 물이다. 군내호 담수호에서 물이 공급되고 있는 것이다. 잘 정비된 수로를 통해서다. 나는 이 가뭄 속에서도 저렇게 싱싱한 벼 이삭이 나오는 것에 경외감을 느끼면서 마을을 벗어나고 있었다.
수유리 쪽으로 가면서 들판을 보았다. 저 멀리 전두와 한의마을까지 펼쳐진 서촌 간척지는 정말 장관이다. 바둑판처럼 잘 정돈된 녹색 양탄자가 깔려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으면 황금 들녘으로 변하겠지! 이 광활한 토지가 40년 전에는 진도에서 낙지가 가장 많이 잡히는 바다였다니! 새삼 그 변화에 감탄 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이 곳 바다에서 수영도 하고 운저리와 고동도 잡으면서 성장했다. 특히 이곳은 갯벌이 좋아 세발 낙지가 많이 잡히고 감퇴, 보리통, 뻘떡게 등이 지천에 널려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많은 추억들이 서려 있는 곳이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새벽에 낙지잡이 배들이 들어왔던 선착장이 있던 곳을 바라보았다. 흔적은 찾아 볼 수 없었으나 그 때의 그 상황이 또렷이 떠올랐다. 북적이는 사람들과 등불, 노 젓는 소리 등이....
수유리 마을 쯤 오자 서늘기가 산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레이저 같던 햇살 끝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부드럽게 늘어지고 있었다. 수유리는 작은 점방이 큰 길을 사이에 두고 두 개가 있다. 대부분의 동네에서 지금은 사라지고 없어진 점방이 두 개나 존속하는 이유가 뭘까! 전두와 수유, 월평, 수역, 북치, 신흥 사람들이 바다와 들녘을 오가면서 막걸리라도 한잔 할 수 있는 곳에 위치해 있어 그렇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잠시 들러 시원한 막걸리라도 걸죽하게 한 잔 하고 싶었지만 못 본채 하고 전두 쪽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청용마을 입구에서 길이 세 갈레로 갈린다. 오른쪽은 전두, 왼쪽으로 가면 쉬미, 직진하면 청용이다. 나는 잠시 서서 바다를 보았다. 바다 역시 붉은 햇살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이곳을 목등이라 부른다. 목등이라는 지명은 전두가 사람 머리라면 여기가 들어가는 초입이라서 그렇게 불려지지 않았나 하느 생각이 든다. 지금은 집들이 들어서고 콘크리트로 바다를 막아 길이 만들어졌지만 우리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만 하더라도 목등 은 고은 모래가 있는 해수욕장이었고 아름들이 방풍림 소나무가 즐비했었다. 아름다운 풍광을 갖고 있는 해변이었다. 우리들이 봄가을 소풍 오는 단골 장소이기도 했다. 그 때 그 시절을 잠시 떠올리며 우리는 가로수 그늘을 따라 전두 1리 마을로 향했다.
전두 1리 마을을 가로지르는 도로에서 수역리 쪽을 보면 넒은 들녘이 마음을 넉넉하게 만든다. 동네를 지나 전두 2리로 가는 길목의 좌측에 바다가 보인다. 전복 가두리와 배들이 즐비하게 정박해 있다. 전형적인 어촌의 모습이다. 여기서 가로수가 우거진 커브를 돌면 살몰이라는 마을 이름을 갖고 있는 전두 2리이다. 마을이 보이는 언덕 좌측에 “바다와 어부, 그리고 시”라는 하와이 횟집의 팻말이 보인다. 주인은 정말 낭만적이고 모험심이 강한 어부로 알고 있다. 여기서 내리막길을 걸어서 커브 길을 두 번 돌고 돌면 고니 생태공원이다.
잘 조성된 잔디공원과 큰 호수가 우리를 반겼다. 많은 단체와 사람들이 모임도 하고 쉼터에서 쉬었다 가는 인기 있는 휴식공간이다. 전두 뚝방에 올라갔다. 시원한 바닷바람이 상큼했다. 자동차를 운반하는 대형선박이 저 멀리에서 지나가고 있었다. 가까이에는 다시마 양식 부표가 점점이 떠 있고 조금 더 안쪽에는 가두리가 떡 버티고 있다. 뚝 중간쯤에 도착해서 시계를 보니 약 2시간 소요된 것 같았다. 해가 바다 속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저 멀리 손가락 섬, 발가락 섬이 보이고 그 위로는 뜨거운 태양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바다 위를 황금색으로 물들였다. 장관이다. 사진을 촬영하면 실제 장면보다 더 멋있게 나오는 곳이 이곳 낙조 장면 사진이다. 한참 동안 앉아서 시원한 바람과 황금빛 낙조를 감상했다.
일어서서 오른 쪽 군내호를 보니 잔잔하기 그지없었다. 이 호수는 나리, 대사, 용인, 금골, 연산, 덕병, 저멀리 녹진 타워와 북산, 정자리, 북치 마을 뒷산의 이어진 능선을 배경으로 펼쳐져 있다. 해가 지는 시간에 전두 뚝방에서 보면 호수 뒤편에 산수화가 그려진 병풍을 펼쳐 놓은 것처럼 보인다. 바다로 해가 떨어지면 호수 너머 산위에는 달이 뜬다. 그 달이 호수에 떨어지면 은색의 하모니가 퍼져 나온다. 아름답고 서정적인 호수가 요정의 눈동자로 변하는 것이다. 시각과 느낌으로만 알 수 있는 물결이 가슴을 향하고 있음을 안다. 권하고 싶다. 달이 뜨는 날을 잡아 초저녁에 이곳을 한번 방문해 보기를.... 또 이곳에서 녹진쪽을 보면 진도타워 불빛과 이순신 장군 동상에서 쏘는 레이저가 구름에 반사되어 신비스러운 광경을 연출한다. 종교적인 색채도 난다.
도보여행 중 2-3시간 정도를 걸으면 힘든 고비가 온다. 이 때는 잠시 휴식을 취하고 넉넉한 마음으로 갈 길을 생각해야 한다. “이 시간대에는 어느 장소까지는 가야하는데” 하고 조급하게 생각하면 감성의 공간은 사라지고 지루함만이 커진다. 걷는 의미를 의심하게 된다. 차분하게 자연의 분위기와 향기를 맡으면서 여유로운 시선으로 어둠을 응시해야 한다.
나리마을과 선착장에 가로등이 켜지기 시작했다. 멀리서 개짓는 소리가 아련히 들리는 시간대다. 우리는 뚝방이 끝나는 지점에서 좌측 해안도로를 따라 나리로 향했다. 완전히 어둠이 내렸다. 이때가 가장 캄캄하게 느껴지는 시간이다.
나리-신기리-무조리까지의 길은 구불구불한 커브길이 많고 오르락 내리락 하는 잔 고개가 여러 개 있는 구간이다. 길 양쪽에는 배수로가 있고 잡풀이 우거져 있었다. 달이 떠 있었지만 가로수 그늘 때문에 길 가장자리는 더 어둡게 느껴졌다. 터벅터벅 걸어서 나리에서 신기리 쪽으로 걷고 있을 때 아스팔트 길 위에 구불구불한 검은 막대기 같은 것이 놓여 있었다. 순간적으로 깜짝 놀라 피하면서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렇지만 어두움 때문에 무엇인지 확실히 파악할 수 없었다. 지나치려다가 다시 돌아섰다. 그리고 휴대폰 전등을 켰다. 큰 독사가 고개를 처들과 나무 막대처럼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느낌이 이상했는데 예상이 적중했다. 아내도 “뭐야” 하고 가까이 왔다. 독사라고 말하자 아무렇지 않는 듯 “그래” 하고 와서 보았다. 마음 속으로 “무슨 여자가 이래”하고 생각했다. 화들짝 놀랄 법도한데 밤에 독사를 보고도 그저 그렇다는 표정이 정말 의외였다.
이 독사는 길을 건너가려다가 사람 발소리가 들리자 죽은 듯이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건들기만 하면 물려고 딱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독사의 습성이다. 우리가 모르고 발로 밟았다면 공격해왔을 것이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우리는 등산화를 신고 야간 트레킹을 한다. 천만 다행이었다. 잠시 불을 비추고 서 있자 독사가 경계를 풀고 다시 숲속으로 들어갔다.
신기리 마을의 가로등은 바닷물에 반사되어 더 환하게 느껴지고 눈을 좀 혼란스럽게 하는 분위기를 연출한다. 가로등 불빛이 야릇하게 비추는 바닷물은 마치 검은 천 처럼 보인다. 위는 환하고 아래는 암흑이다. 우리는 마을 앞 해안도로를 걸었다. 선착장과 무조리로 나누어지는 길목에서 고추가 널려 있었다. 요즘에는 주로 햇볕보다는 건조기에서 고추를 말리는 추세인데 올 여름은 햇볕이 강해 길거리에서 말리는 모양이다. 그야말로 태양초 고추다. 가로수 아래에서 말리는 고추냄새가 주위에 퍼져 있었다. 고소하면서도 매운 향이 은근하게 밀려 왔다. 위험방지턱에 잠시 걸터앉아 양발을 바꿔 신었다. 젖은 양발을 오래 신으면 발가락이 젖어 통증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시 일어나 무조리로 향했다. 넘어가는 고개는 조금 가파르다. 헉헉대며 오르면서 하늘을 보니 크다 만 보름달이 산위에 두둥실 떠있었다. 무척이나 밝았다. 그림자가 아주 선명하게 나왔다. 이 달이 아침까지는 가지 못하고 새벽 2시 정도면 질 것 같았다. 밤새 트래킹 하려면 달이 있는 날이 좋다. 그것도 보름달이면 더 좋다. 오늘은 아닌 것 같았다. 무조리 마을 입구에서 선착장을 보니 낚시를 하는 분들의 불빛이 보였다. 차량도 여러 대가 주차해 있었다. 더위도 피하고 고기도 잡는 여름밤의 낚시는 인기 있는 레저 스포츠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조리 마을을 지나 숲이 우거진 작은 고개길을 오르면 저 멀리 진도대교의 아름다운 조명이 눈에 들어온다. 길 주위에는 한두 채의 주택들이 들어서 있다. 오래된 허름한 집도 있고 최근에 신축한 현대식 주택도 띄엄띄엄 보인다. 또 이 구간은 바다 건너 화원관광 단지와 우수영 불빛이 화려하게 보이는 지점이다. 우리는 흐르는 땀을 훔치면서 커다란 무조리 마을 표지석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트레킹 하면서 아쉬운 것은 동행하는 사람과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아무도 없는 심야에 밤길을 걸을 때는 더욱 그렇다. 우리는 번갈아 가면서 인증사진을 한 컷씩 찍고 난 후 그 사진을 보았더니 피로한 기색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목표 지점인 녹진대교가 눈앞에 보이니 “많이 왔구나” 하는 생각에 힘이 솟았다.
환한 달빛, 간간히 들려오는 개 짓는 소리, 밤 하늘을 배경으로 선명하게 그어진 능선, 바다 너머 뿌려진 도시불빛 등을 감상하면서 우리는 말없이 한참을 걸었다. 고려조선 산업단지에 이르렀다. 야간에 작업을 하는 기계음이 정적을 깨고 있었다. 포크레인으로 굴착하는 모양이었다. 길을 걷다보면 어느 지점, 어느 각도에서 보느냐에 따라 사물의 모습이 달리 보인다. 진도대교의 야경도 정말 아름답게 보이는 지점이 몇 군데 있다. 그 때마다 사진을 찍어 보지만 스마트 폰 사진으로는 그것을 다 담을 수가 없었다. 아무튼 무조리에서 녹진까지는 지루한 구간이다. 낮에는 시원한 바다를 보면서 걸을 수가 있어 지루하지가 않지만 어둠에 잠긴 이 길은 땀과 인내력이 필요하다. 침묵의 도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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