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4.09목

작성일: 2023-04-28 09:58
나무에게 가위를 대는 것은 나무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끝내 하지 않을 일입니다.
제 처남은 의신면 칠전에 삽니다.
밖에서 살다가 나이 들어 태 묻은 곳 찾아 귀향하였습니다.
장인 장모와 그 윗분들이 계시는 유택은 물매가 큰 북쪽 비탈입니다. 산 너머 커다란 태양광 발전 시설로 가는 길을 내면서 찢긴 절개지가 아무래도 위태하여 불안한 처남이 군에 찾아가서,
“이제 곧 장마철인데 만일 절개지가 무너지면 선대의 산소들이 위태하니 대책을 세워 달라” 했더니
대단하신 담당 관리님께서 하신다는 말씀이.
“지금 무너지기라도 했소? 무너지지 않았는데 어떻게 무너질 것이라고 단정하시오? 무너지면 그때 민원을 제기하시오.” 해서
“내가 잘못 왔구나.”
마치 벽을 보는 듯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내 고향의 현실입니다.
저들은 살아 있는 것들은 빽 소리 지르면 구석에 숨는 늙은 괴대기 간은 헛것들뿐인데 뭐가 두려워,
‘군수 따위 금방 끝나’입니다.
가히 볼만 합니다.
다시 말 하건데 내 자식에게 회초리를 드는 것은 내 자식이 귀하기 때문입니다.
자식이 귀하지 않으면 못할 일입니다.
님께서 차리신 상에 감히 숟가락 더 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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