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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수에게 바란다(군민소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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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6-06-01 09:43 (수정일: 2016-06-10 13:40)

제목 김현 선생 표지석을 만들어 놓읍시다.
작성자
박종호
조회
3194

김현 표지석을 세워주십시오

진도가 낳은 세계적인 문학평론가 김현 선생을 기리는 표지석을 세워주십시오.
진도읍 남동리 속칭 네거리 남문로 입구 보도에 옛 김현 생가 앞에다 표지석을 세워주십시오.
지난 해 서울, 김현 선생이 생전에 만들었던 문학과지성사와 한국작가회의, 광주전남 작가회의 회원들이 진도를 방문하였습니다.
진도군수님의 배려로 목포에서 김현문학축전을 마치고 진도관광버스로 진도를 찾아 남문로를 탐방하고 진도타워, 세방낙조, 운림산방과 쌍계사를 둘러보고 1박2일 문학기행을 가졌습니다. 순수한 정부 문예기금으로 진행하여 지역경제에도 기여하였습니다. 제가 직접 안내를 하였습니다.
박병훈 진도아리랑보존회장님과 회원들이 공연을 하여주시기도 했습니다.
그분들이 오는 가을 다시 진도를 방문합니다.
그 때 이분들이 진도에 와서 김현 선생의 표지석을 볼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진도 철마도서관에 김현 전집을 구해 비치해 주십시오.
해마다 많은 작가들이 진도를 찾을 것입니다.
진도의 문인들과 논의하여 김현문학상을 제정 시상하도록 추진해 주실 것도 부탁드립니다.
물론 더 먼저 진도의 문인들이 자발적으로 앞장서 추진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최근 천병태 진도예총지부장이 중국에서 도라지문학상을 수상하였습니다. 경하할 일입니다.
벽파정이 복원되었습니다.
시와 문학이 있을 때 진도는 진정한 문화의 세박자 시서화를 갖춘 예향으로 거듭날 것입니다.
앞으로 소치 선생, 김 현 선생, 곽의진 선생, 박병천 선생 등 진도가 배출한 기라성같은 명인들의 흉상을 세워 놓을 곳을 미리 마련해야 합니다. 분명 진도의 또 다른 기품있는 명소가 될 것입니다.
선견을 가지시고 진도문화예술의 선각자분들을 기리는 작은 공원이 필요합니다.
지난 해 우여곡절 끝에 진도 무형문화재전수관 앞에 다시 세워진 대금국수 박종기 선생의 사례가 반복되어서는 안됩니다.
먼저 김현 선생의 표지석을 꼭 부탁드립니다. 진도군의회 의원님들께도 부탁드립니다. 구체적인 모양 문구 등은 진도예총, 진도문협이나 향토사학자등과 사전 논의하시면 더욱 좋겠습니다.
-2016년 6월 1일 박남인 올림.


1961년 겨울 남도의 항구도시인 목포의 한 다방. 곧 눈이라도 내릴 듯한 회색빛 하늘, 잎진 가로수를 훑고 지나가는 찬 겨울 바람. 갈탄 난로가 타오르고 있는 한 다방 안에서 스무살을 갓 넘긴 문학청년 몇이 둘러앉아 문학 얘기를 나눈다. 이들중 한 명은 20세기 후반기 한국문학을 견인하는 중요한 비평가가 되고 또 두 사람은 한국문학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할 소설가와 시인이 된다. 비평가는 김현이고 소설가는 김승옥이고 시인은 최하림이었다. 1962년 여름 한국어로 사유하고 한국어로 글을 쓴 최초의 한글 세대인, 아직 너무나 젊은 한 무리의 문학 지망생들이 모여 만든 "산문시대"는 그렇게 탄생한다.

김현. 김승옥. 최하림 등 스무살을 갓 넘긴 나이에 4월 혁명이 흩뿌린 주체 정신과 사유 방식을 수유받은 이들 문학도는 동인지 "산문시대"의 창간호에서 당돌하고도 비장하며 패기에 찬 어조로 자신들의 시대를 선언한다. 새로운 감수성과 방법론으로 다음 시대를 열어갈 주역들이 만든 "산문시대"는 세 사람의 창립 동인에 강호무. 김산초. 김성일. 염무웅. 김치수. 서정인 등이 가세하며 저희만의 영지(領地)를 일궈나간다. 이들이 일궈낸 영지에는 "사소한 것의 사소하지 않음" "자기 세계" "개인의 자유의지"라는 팻말을 붙일 수 있을 것이다.

김현은 죽은 뒤 "1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평론가"라는 말이 나올 만큼 당대의 한국 문학에 넓고 깊은 영향을 미쳤다. 갓 스물이던 1962년에 "자유문학" 신인 공모에 당선되면서 비평 활동을 시작한 그는 저희 또래가 4월 혁명의 이념인 자유와 민주 정신을 승계한 적자라고 굳게믿으며 식민지 언어에 기생하지 않고 한글로 사유하고 한글로 글을 쓴 제 1세대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엄청난 독서량과 섬세하면서도 날카로운 작품 분석, 인문학 전분야를 아우르는 드넓은 지적 관심, 그리고 명료하고 아름다운 문체로 비평을 창작에 기생하는 장르가 아니라 독자적인 문학 장르로 끌어올린 최초의 비평가로 꼽힌다.

본명이 광남(光南)인 김현은 1942년 7월 29일 전남 진도군 진도읍 남동리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과 관련해 그의 기억을 채우고 있는 것은 옻나무, 발목까지 빠지던 뻘의 감촉, 가도가도 끝이 없는 여름날의 황톳길, 더위, 모깃불의 매캐한 냄새 등이다. 그는 섬에서 초등학교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부모를 따라 뭍으로 이사해 7월에 목포 북교국민학교로 전학한다. 그의 아버지는 목포 공설시장 앞에서 "구세약국(救世藥局)"을 열어 양약 도매업을 했는데 충청 이남의 양약 공급을 장악할 만큼 사업에 크게 성공한다. 목포중학교를 졸업한 그는 1957년 서울에 올라와 경기고등학교 입학시험을 치르지만 떨어지고 목포의 문태고등학교로 진학한다. 그러나 입학한 뒤 그는 곧 서울의 경복고등학교로 전학한다. 뒷날 화제가 되기도 한 그의 다독 습관은 어릴 적부터 나타난다.

상태 답변완료 / 2016-06-10 13:40:44.0
내용 귀하의 가정에 항상 행복이 가득하시길 기원하며, 군정 발전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여 주신 것에 대하여 감사드립니다.
우리군에서도 진도 출신 저명 문화예술인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올해 하반기에는 진도학회(회장 나경수) 주관으로 “한국 문학비평의 거목, 김현의 삶과 문학세계”란 주제의 학술대회를 개최할 예정입니다.
이번 학술대회를 통해 문학평론가 김현 선생에 대한 학술적 조명과 업적, 활동 등에 대한 체계적인 정리가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진도 출신 문화예술인에 대한 학술 및 홍보자료로 활용할 계획입니다.
향후 진도 출신 문화예술인 홍보 및 재조명 사업 추진 시 귀하의 소중한 의견 또한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으며, 군정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고 제안하여 주신 것에 대하여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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